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이성휘

2019년 6월

 

1932년에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올더스 헉슬리, 이덕형 옮김, 『멋진 신세계』(서울: 문예출판사), 1998.)는 제목과는 달리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적 진보에 도취된 인간이 맞이하게 될 비관적인 미래에 대해서 그린다. 공상과학소설 또는 미래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작품이 내다본 미래의 한 지점인 2019년에 있는 우리는, 인간 문명이 이룬 극강의 진보는 결국 인간 자신을 도구화하고 노예로 전락시킨다는 헉슬리의 반유토피아적 세계관이 공기 그 자체가 된 세상을 살고 있다. 공기보다 우리 삶을 더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미디어가 인간 문명의 비관적인 미래에 대한 이유이자 증거다. 이 상황을 이채은은 각종 미디어와 여러 미술사적 레퍼런스로부터 차용한 도상들을 몽타주 하여 채워 나간 '꽉 찬 회화'에 담는다. 즉, 작가는 "일상을 살면서 접하게 되는 주변의 멀고 가까운 뉴스나 SNS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현 사회 현상에 대한 생각"(이채은의 포트폴리오(2019) 내 작업노트에서 인용.)을 캔버스 화면에 가득 채운다. 

이채은은 자신이 캔버스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을 영화 기법인 지적 몽타주(intellectual montage)에 빗댄다. 그는 "작품 속 인물과 사물, 배경과 공간 등이 만들어내는 미장센과 이들 요소 간의 배열, 관계성뿐만 아니라 그것과 결합하는 텍스트 등 시각 외적인 요소를 통해 입체적인 지적 몽타주"(위의 포트폴리오에서 인용.)를 만들고자 하는데, 고전영화나 명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상황을 차용하여 미디어를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오늘날의 디스토피아적 상황과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예컨대, 가로폭이 259 cm에 달하는 대작 「거울 속의 거울 Spiegel Im Spiegel」(2019)은 카라바조의 그림 『의심하는 도마』(1601-1602)와 히치콕의 영화 『』(1963)의 등장인물들이 화면 구도상 중요한 위치를 양분해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주변으로 서울 도심의 풍경들, 경찰, 등 우리의 일상 공간이거나 미디어를 통해 익숙해진 사건과 인물들 이미지가 콜라주 되었다. 화면의 중앙 가까이에 있는 접힌 플래카드는 '(과거이자) 미래다'는 문구를 제외하곤 읽히지 않는다. 이 '미래'라는 단어는 화면 좌측 셔터 위에 검붉은색으로 거칠게 쓰인 '철거'라는 단어와 대비되고, 화면상의 모든 이미지들과도 대비되어 희망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특히 이유를 모른 채 (새떼의 공격에 쫓기는) 여성의 불안 가득한 얼굴이나 예수의 환생을 의심하는 제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작가가 반복적으로 회화 화면에 투영하고 있는 동시대 사회에 대한 우리의 불신과 불안이다.

이채은의 화면은 레퍼런스와 암시들로 가득하다. 그는 히에로니무스 보쉬(Hironymus Bosch)와 카라바조(Caravaggio),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er David Friedrich)와 같은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화가들뿐만 아니라, 보르헤스의 소설, 주디 갈란드가 주연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히치콕의 『』 등 다양한 예술적 레퍼런스들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또한 미디어를 통해 접한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최근에 과학자들이 블랙홀의 그림자를 촬영한 일과 같이 인류 문명사에 기록될 법한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캔버스로 가져온다. 그가 이용하는 레퍼런스들에는 우화적인 요소가 다수 등장한다. 일례로 「트위스터(Twister)」 시리즈(2017-2018)의 한 작품인 「트위스터  I(Twister I)」(2017)에서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보쉬의 『마술사 (The Conjurer)』(1502)를 주요하게 차용하였다. 우리는 대부분 『오즈의 마법사』를 토네이도에 의해 환상적인 여행을 하게 된 도로시의 모험으로 알고 있지만,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원작 소설(1900)이 발표된 지 60여년 후, 한 연구자에 의해 이 작품이 순수한 동화가 아닌 19세기 말 미국의 화폐정책을 둘러싼 정치사를 다루고 있음이 드러났다.(https://americanhistory.si.edu/blog/populism-oz.) 즉, 도로시가 만나는 인물들이나 방문하게 되는 장소들은 모두 당시 미국의 경제 정책을 주무른 세력들과 지역을 암시하며, 당시 자본가들이 금본위제를 고수한 것과 달리 은본위제에 대해 신념을 가졌던 원작자는 자신의 정치의식과 풍자를 소설 속에 교묘하게 숨겨 놓았다. 이채은은 원작소설보다는 영화에서 주디 갈란드가 마녀로부터 획득한 붉은 구두를 신은 모습을 화면으로 가져왔다.(영화에서는 주디 갈란드가 빨간 루비 구두를 신었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도로시가 은구두를 신었고 이 은구두 뒤축을 세번 부딪혀 캔자스 집으로 돌아오게 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원작자의 은본위제에 대한 신념을 드러낸 것이다.) 한때 온 미국 어린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아역 배우 주디 갈란드가 분한 순진한 시골 소녀 도로시는 미국 여자 아이의 전형이자 매력적인 주인공이었다. 이러한 도로시를 이채은은 화면 전경보다는 후경에 두거나(「트위스터  I」), 빨간 구두를 신은 신체 일부만 반복적으로 보여주거나(「트위스터 III」), (새의 공격으로) 얼굴을 가려버린다(「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즉, 이야기의 주인공에 대한 의심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속고 속이는 관계를 보여주는 보쉬의 『마술사』를 도로시와 더불어 즐겨 차용하는 것과 상통한다. 이 그림은 마술사가 들고 있는 진주 구슬에 시선을 뺏긴 고관대작이 주인공인 듯하지만, 마술사의 기교에 마음을 뺏긴 나머지 자신이 소매치기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 고관대작은 이채은의 여러 그림 속에서 크고 작은 비중을 차지하며, 세상을 순진하게 바라보거나 조심성 없이 쉽게 현혹되면 생기는 일들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이채은의 회화에는 일련의 군중들이 등장하곤 한다. 신작 「사라진 것들을 위한 노래」(2019)와 「합창」(2019)에서 노래하는 소녀들, 「20190410」(2019)과 「트위스터  II」(2017)의 운동선수들, 「경계에서」(2018)와 「트위스터  III」에서 군인들이 그것이다. 「마이랜드」(2018)에서는 단체 율동을 하고 있는 소녀들도 등장한다. 이들은 캔버스 화면의 일부 영역에서 집단적 제스처를 보여주며 그다지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않지만, 20세기 전반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에서 등장하곤 했던 마네킹이나 로봇을 연상시킨다. 할 포스터는 초현실주의에 등장한 마네킹이나 로봇이 당시 자본주의와 기계문명에 의해 촉발된 기계와 상품에 대한 언캐니를 드러낸 것으로 보았다. 즉, 20세기 전반의 전쟁, 사회경제적 위기, 노동의 기계화와 생산품의 규격화가 인간 심리에까지 침범해 들어온 것을 반영한다는 것이다.(할 포스터, 조주연 옮김, 『강박적 아름다움』(파주: 아트북스), 2018. 185-221쪽.) 이채은은 자신의 그림에 등장하는 일련의 군중에 대해서 집단적임이나 전체주의와 같은 것을 표현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체로 무표정한 얼굴로 도열한 인물들. 이들의 동작은 무엇인가에 도취된 듯 인간적이기보다는 기계적이고 무감각적이다. 특히 『마이랜드』에서는 화면 하단부에 도열한 (마치 매스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소녀들의 율동과 대각선 구도, 그리고 아래서 위를 향하는 시선 방향이 심리적 불안까지 야기시킨다. 감히 추억과 낭만이 넘치는 월미도 테마파크, 마이랜드에서!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촬영할 때 주디 갈란드는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의 학대와 성추행, 그리고 약물중독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불러 일약 스타가 된 이 배우는 헐리우드라는 거대 집단에 의해 개인적 삶을 희생당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녀가 부른 노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아름다운 곳이 있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들 때문에 가장 사랑받는 올드팝 중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리메이크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채은의 도로시는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지 않는다. 그의 그림들 속에서 아직 귀가조차 하지 못한 도로시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 서 있을 뿐이다. 자신의 안심귀가를 도울 안내인을 알아보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