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는 눈 : 이채은 〈눈먼 자를 위한 노래〉

허호정(미술비평)

월간미술 6월호, 2021


읽을 것이 너무 많은 회화가 있다. 그의 그림 안에는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 알 만한 도상들이 즐비하다. 보도 사진, SNS 피드, 고전 명화, 영화에서 봄 직한 이미지나 유명 브랜드의 옷가지와 신발, 상징적 제스처, 크고 작은 활자들. 하지만 이 넘쳐나는 ‘읽을거리’들은 보는 이 각각에게 차별적으로 존재하는 선(先)경험이나 선(先)지식, 고유한 감정, 기분에 따라 읽히거나 읽히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채은의 회화는 동시대 이미지가 처한 일반적 조건을 공유한다. 즉, 무수한 파편이 직조되는 가운데 개별자의 리터러시(literacy)가 문화적 공동을 형성하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거나, 혹은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조건 말이다. 어떤 이미지가 즉각적으로 ‘대중적’ 이며 광범한 인지를 획득하는 일과는 별개로 계층, 젠더, 나이, 지역, 정동, 물리적, 심리적 소속집단의 여부와 차이 등 무수한 요건에 따라 이미지 리터러시는 상이하게 작동한다. 이 같은 조건 위에서 읽을 게 너무도 많아 보이던 회화는 역설적으로 ‘눈멂’을 소환한다. 그림 안에 등장하는, 눈을 가린 사람들은 범람하는 이미지들 앞에 눈먼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러던 그림 한가운데 눈을 또렷이 뜨고 선 한 명의 인물이 있다. 그는 눈을 감거나 눈을 잃어버리거나 눈을 가린 그림 속 인물들 사이에 서서 회화 자체를 뚫어보며, 반대편의 관객을, 전시 공간을, 이 사회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누군가는 알아차렸을 테지만 이 인물은 수만 명의 SNS 팔로워를 거느린 가상의 인물 IMMA이다. 실존하는 생명이 아닌 이 인물은 SNS의 생태 안에서 자기 삶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다. 사람들이 바라 마지않는 개성, 외양, 라이프 스타일 등을 덧입고 현실을 더 현실처럼 살아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네트워크 속 인물은 현실의 한가운데에 가상성의 새로운 차원을 난입시킨다.

IMMA로 대표되는 이채은 회화의 어떤 도상들은 특수한 리터러시를 요구하는 한편, 캔버스가 구축하는 세계에 현실과 가상이 서로를 매개로 삼고 차원을 넘나들도록 구멍을 만든다. 가령, 무엇이든 덧씌울 수 있는 그린스크린(크로마키 배경)과 장막(커튼)이 그렇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윈도우갤러리에 펼쳐진 〈로르샤흐 풍경〉과 40×40cm의 작은 회화들은 이러한 도상적 요소를 독립적으로 배치한 작품들이다. 그중 〈녹색 반점〉은 그린스크린의 색상을 추출해 ‘새’ 의 형상을 그린 그림 〈녹색 반점 I〉과, 이를 판 삼아서 찍어낸 결과물인 〈녹색 반점 II〉로 구성된다. ‘녹색’은 배경 위에 어떤 이미지도 삽입할 수 있는 CG 기법을 위한 크로마키 그린 스크린을 지시하고, ‘반점’은 사실상 형상이 없으나 보고자 하는 무엇을 투사하게 만드는 시각적 얼룩이다. 이와 마주 보도록 배치된 〈댄서〉와 〈바니타스의 재현〉은 각각 이채은이 이전에 완성한 회화의 부분과 오래된 네덜란드 정물화의 부분을 재현한 것이다. 여기서 원본이나 전체는 당장 상기되지 못한다. 이뿐만 아니라 각각은 원본/전체와 외따로 작동하는 별개의 이미지

조각이 된다. 이들은 〈녹색 반점〉과 유사한 원리에서 임의적 투사와 오독, 나아가 독해불가능을 자유롭게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이채은의 회화를 두고 언급되는 몽타주의 방법론은 눈먼 그림 읽기와 가상적 이미지 파편에 어떻게 관여하는가? 다양한 읽을거리-이미지들을 가져와 한 장면에 배치하는 그 방식은 몽타주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몽타주는 영화적 장면 연출이나 서사, 혹은 변증법적 이미지로서의 방법론에 수반하는 시간적 차원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보다 방점은 몽타주를 차용하는 회화에서 발견된 필연적 평면성에 있다. 달리 말해, 이채은은 몽타주에서 무빙이미지의 시간적 차원을 탐구하기보다 이미지 자체의 평면과 색채에 주목하며 그만의 몽타주를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성실한 묘사를 의도적으로 누락하면서 형상을 뭉개고, 이로부터 물감의 평평하고도 끈덕진 물성을 자주 드러내는가 하면, 이미지 파편들을 파편으로서 보여줬다. 결국, 두드러진 물감 자국은 자체로 이미지의 네트워크, 스크린, 거대한 장막을 형성하며 가상과 현실, 눈과 눈멂, 리터러시와 독해불가능성 사이에 개입한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회화와 전시에 당도하여 관객은, 이미지가 쌓여 만드는 겹겹의 불투명을 불투명한 눈으로 더듬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