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시공 그리고 세계관 플레이
장진택(독립 큐레이터)
2021년8월
질서와 혼돈, 분열과 합일, 유의미와 무의미, 맥락의 존재와 부재, 실제와 초현실 등, 그처럼 언뜻 헤아리기 어려운 상충의 가치들을 한 화면 안에 (불)규칙적으로 뒤얽어낸다. 보통은 인물과 사건을 선형적으로 엮어내고, 특정한 의도를 그 위에 투영하면서 발생시키는 보통의 서사 메커니즘은 여기선 필연 성립하지 않는 듯하다. 덕분에 엔트로피적으로, 이미지 그리고 그것이 내포한 스토리텔링이나 그 목적과 같은 하부 구조는 완전히 다른 특질의 것으로 제 실재의 이유를 달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화학적 변화의 효과는 물리적 차원에서의 변형과는 구분되는데, 화학적 변화의 경우엔 그 결과를 돌이키거나 과정을 중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정의하는 큰 특질이라 할 수 있겠다. 종국에 이 변화는 수많은 이미지-서사를 조합해 하나의 구성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가라앉혀진 기저의 무엇을 좇게 함과 동시에 문학적 재-맥락화(Re-contextualisation)의 효과를 극적으로 창출키도 한다. 그러한 화학적 과정을 거쳐 이 변화는 자신이 창출한 저 재-맥락화의 효과를 보다 더 복잡하고 다단한 단계에 걸쳐 본체의 중추와 말초에 주입한다.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결합체(Combination)’는 공식적(Formulaic)으로 중합(重合)의 과정, 다시 말해 일정한 ‘단량체(Monomer)’ 사이의 반복적 연결 방식으로 다중 합성한 형태의 개체이기에 ‘중합체적 결합체(Polymeric Combination)’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혼재하고, 나열하며, 부유하거나, 매끈하고 평평하면서도, 굴곡진 마감을 통해 단일하기도 혹은 다수이기도 한 풍경이 있다. 이는 회화라는 하나의 미술사 내 범주의 역사 그리고 몇몇 동시대적 형상과 비교해서도 분명 특별한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짐작건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이행이라는 현재의 과도기적 상황도 이 특수한 미적 실현을 분명 지지했을 테다.
이채은의 작업은 이상으로 기술한 몇 가지의 선형적 기준 축을 이차원과 삼차원으로 가로지르며 구축된 어떤 지점 위에 서 있다. 작가의 작업은 각 이미지 사이의 상응성을 가늠키 어렵도록 설정된 교차 함수를 따르는 화면 구성의 방식, 그리고 그가 그려낸 화면을 구성하는 기능을 부여받은 각 이미지 원본의 서로 다른 출처와 연관한 인용의 독립적 또는 통합적 조건, 끝으로 작업을 둘러싼 각각의 주체들에 의해 연달아 행해지는 자유로운 선택들을 포괄한다. 우리에게 노출하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창작자가 어떠한 의도를 품고 선택하는 일차적 도상 및 그것이 표상하는 이야기, 이 수집된 이야기를 다시금 하나의 이미지-서사로 구축해 가는 창작 과정에서의 선택 목적, 그리고 관객이라는 또 다른 작업의 주체에 의해 이어지는 관람 후 해석이라는 자유의지에 기반한 예측 불가능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이채은의 회화는 그렇게 사건을 둘러싼 관점의 투영이 발현되는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메커니즘 자체를 분절하고, 잇고, 자르고, 떠내어 담는다. 이미지들이 배치되는 도중 각각의 개별적 어조는 곧 전체를 위해 파열 당하며, 그 파열하는 어조의 형상은 곧 디지털 환경을 살아가는 대중의 요청에 따른 문화 전방위적 차용, 번안, 각색 등, 소위 편집 행위의 그것과 유비하는 동시대 창작 방법론과도 조응한다. 이채은이 수행하는 재-맥락화의 형식적 구축에는 이처럼 기존 서사의 맥락으로부터 해방하는 평평하고도 순수한 이미지의 추출 과정이 선행한다. 이른바 맞춤(Customised) 형상으로 재단된 이미지 도상들의 콜라주는 이렇듯 수많은 상징이 공존하는 역사적 기록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를 기반으로 하는 변용 이미지로 역할 하는 한편, 나아가 그 이미지가 독립적이면서도 통합적이기도 하나의 세계관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실은 지시와 교훈의 측면이 강한 미술의 일반적인 기록화 범주와는 구별된다.
결국 이채은의 세계는 가시적으로는 엔트로피가, 즉 무질서의 정도를 물리학에서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증가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각각의 도상은 이와 연동하여 역설적으로 새로운 오늘날의 균형 상태를 재현해낸다. 다만 이 평형을 유지하는 동시대의 안정도는 미시적으로 구현될지언정, 이는 거시적인 감각의 차원과 동기화하고 있음을 관람자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엄밀하게 작가의 회화는 그가 선택한 어떤 인물과 사건 그리고 그 서사 자체를 수합해 이어 붙이고 재구성하는 식의 방법론을 통해, 일련의 미시적 재현을 거시적 탈재현을 위한 재현이라는 본체의 하위 기관으로써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이채은이 설계하는 이 감상의 테크 트리를 따르다 보면, 그 끝에서 귀류법(歸謬法)적으로 시작의 순간을 돌이키게 되는 까닭도 바로 그와 같은 배치에 기인할 것이다. 그리고 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이것이 어느 시점에선가는 반드시 멈추어진 이미지 형상의 시각적 구성을 띠어야만 한다고 할 때, 끝이라는 마지막 지점에서 그 시작으로 회귀한다는 건 이채은 작업에서는 이미지들의 재조합을 위한 일종의 사전 준비 단계로서 해체의 순간을 상기함을 의미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앞서 기술한 것과 같이, 미시를 위한 미시로서 이 해체를 행하거나 그로부터 마련된 개별 이미지의 미시 서사를 위해 이 해체가 실행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의 화면을 구성하라는 지시체로서의 대상 이미지들은 곧장 거시 서사를 완결키 위해 각기 질주한다. 바로 이때, 부분과 전체가 일정한 순차에 의해 혹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지하는 형태의 이미지 간 관계 구도는 마치 그 배율의 정도에 따라 연속 또는 단독 이미지로 달리 인지되는 감상을 가능케 하며, 이는 작품을 두고 일어나는 작가와 관객의 소통에서 상치 동시성이라는 독특한 역치(閾値)를 형성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인용과 탈재현, 그리고 무질서와 안정과 같은 대비적 개념을 동시적으로 전유하면서 이채은의 작업은 특정한 시대 감각 자체를 시사하게 됐다. 이는 작가가 채택하는 매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주요한 특징이기도 한 회화의 정지성과 한정성이라는 시공간적 성질과 함께 반응해 도출된 결괏값으로, 이러한 관람 경험이 관객이 향유하는 감상의 유효성이라는 측면과 다시 한번 맞닿으며 자기 지속성을 내재한 하나의 미적 세계관을 창출하는 작가의 연출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 가운데 관객은 작가에 의해 보장받은 자유로운 감각 선택을 통해 스스로가 지금을 어떠한 시대로 인식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로써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채은의 작업은 엄밀하게 그의 작업과 세계관을 마주한 이들의 시대 인식이라는 체계에 분명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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