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징후, 불안을 드러내는 회화

백종옥

2020년 3월


갈수록 많은 것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2011년에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2014년엔 수백 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함께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건강을 위협하는 황사와 미세먼지로 뒤덮인 도시 풍경은 일상이 되었고, 수많은 동물과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여러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요즘은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여러모로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런 재난들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치계는 저급한 정쟁이 끊이질 않고, 언론계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뉴스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낸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이 일어나기만 하면 사회는 쉽게 사분오열된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번잡한 세상사를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단편적인 정보만을 취할 뿐 무엇이든 쉽게 믿거나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신뢰감이 부족한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각종 SNS에서는 불신과 불만 그리고 혐오의 언어들이 넘쳐난다.

이런 사회적인 흐름에 대해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들은 저마다 작품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이채은 작가 역시 당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보며 표현하는 예술가들 중 한 명이다. 그녀는 특히 세월호 참사와 그 후 이어진 사회적 혼란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이야기나 이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날마다 넘치는 정보를 접하고 살지만 그 가운데에서 정작 그녀가 느낀 것은 불안과 불신 그리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기존에 그려오던 휴식과 몽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기존의 작업도 현대인의 고단한 삶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느낀 점들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런 의도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많은 정보의 파편만을 받아들이듯 파편적인 이미지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런 이미지들은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뉴스나 사회적인 쟁점과 관련된 것들인데, 단순한 나열과는 다르게 병치, 혼합된 이미지들이 우리의 삶에 대해 성찰하도록 만든다. 몇몇 대표작들을 살펴보면 그녀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공감하리라고 본다.

2017년에 제작된 <트위스터 I, II, III>는 이채은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삼면화로 구성된 이 평면회화에는 갖가지 이미지들이 두서없이 조합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세 개의 그림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형상은 트위스터 놀이판과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트위스터는 2~8명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인데, 회전판의 지시에 따라 놀이판의 해당 색깔이 있는 곳에 두 손과 두 발을 차례로 옮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참여자들의 몸이 뒤틀리고 서로 엉키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이처럼 이 그림에 등장하는 트위스터 놀이판은 여러 사건들이 얽혀서 ‘뒤틀리고 왜곡된(twisted)’ 상황임을 강조하기 위한 기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삼면화를 보고 있으면 몇몇 그림들이 연상된다. 왼쪽 그림의 중심부에는 상체를 구부리고 무언가를 관찰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인물은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마술사>(1502)라는 작품에 나오는 구경꾼의 모습과 같다. <마술사>에서 구경꾼은 마술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자신의 주머니를 뒷사람이 훔쳐가는 것도 모른다. 한 마디로 속고 속이는 상황의 '희생양'을 의미한다. 이 <마술사>라는 작품 이미지는 중간 그림에 그려진 이젤 위에 다시 반복된다. 그리고 중간 그림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에 그려진 새떼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또 오른쪽 그림의 바다 풍경과 해군의 전쟁 장면은 일본 전통 목판화(우키요에)인 <인천에서 일본 해군의 위대한 승리>(고바야시 기요치카,1904)를 차용한 것이다. 이 전쟁터의 하늘은 온통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다. 또 하나 시선을 끄는 것은 군무를 추는 소녀들과 열을 지어 총을 쏘는 군인들 그리고 공을 들어올린 소년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이다. 처지는 다르지만 자의든 타의든 집단행동을 따라야 하는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여기저기 배치된 크고 작은 인물과 사물의 이미지들이 저마다 사연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렇게 삼면화에서는 영화의 '지적 몽타주(intellectual montage)' 기법처럼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현시대와 특정 미술작품에서 차용된 장면들이 병치되고 혼합되어 상징적인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어내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 분위기는 작금의 시대 상황처럼 매우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환상문학의 대가 보르헤스의 소설 제목을 차용한 작품인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2017)은 앞에서 소개한 삼면화와 달리 하나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역시 다양한 이미지들이 섞여 있다. 트위스터 게임을 하는 사람을 비롯해 여성과 아이, 주차금지 표지판, 전봇대, 소파와 고양이, 공사장 노동자, 춤추는 풍선 인형 등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만한 것들이 맥락 없이 곳곳에 배치되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형성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화면 중심의 약간 좌측에 서 있는 여성과 아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얼굴에 새들이 들러붙어 있고, 아이는 겁을 먹었는지 여성의 치마폭 사이에서 머리를 내밀고 여성의 얼굴 쪽을 쳐다보고 있다. 이 여성과 아이 그리고 새들과 배경의 건물은 히치콕의 영화 <새>(1963)에 나오는 장면을 차용하여 변형시킨 것이다. 영화 <새>를 보면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새들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 나오는 여성은 얼굴을 가린 새들 때문에 제대로 현실을 볼 수 없어서 불안에 빠진 듯하다. 작품 제목의 암시처럼 그녀는 끝없이 이어지는 미궁 같은 삶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앞에 소개한 작품들보다 더 뚜렷하게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그림은 <검은 구름의 습격>(2017)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1832)을 차용하여 현시대상을 은유하는 이미지로 치환한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불안이나 불길함보다는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보통 풍경화라면 아름답게 그려진 산과 호수 같은 것들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이 그림은 그러한 기대를 철저히 무너뜨린다. 그래서 훨씬 불편한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특히 배경에 후지산과 함께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어둡고 혼란스러운 하늘은 전체 풍경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매연, 황사, 미세먼지로 가득찬 오늘날의 하늘이다. 그 밖에 오뚜기들과 베트맨 그리고 원전 표시 같은 것들도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화면 중심부에 있는 두 광대와 그 주변의 무지개는 참으로 기묘하게 보인다. 길 위에는 두 광대가 함께 발을 맞대고 위태롭게 서 있는데, 이들이 과연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무지개가 후광처럼 광대들의 머리 주변을 감싸고 있다. 흔히 밝은 미래와 희망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무지개가 이토록 암울한 풍경 속에 그려져 있다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분히 역설적이다. 인간들의 삶이란 마치 어리석은 희망을 안고 벌이는 광대 짓 같은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위태롭게 서 있는 두 광대는 2018년에 제작된 <경계에서>에도 등장한다. 우리의 불안한 삶을 상징하는 두 광대는 이 작품에선 역사적인 장소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광대들의 좌측 공간엔 먼 바다에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배경으로 인천 월미도의 유원지 마이랜드의 바이킹(놀이기구)이 있고 그 옆으로 북한과 미국의 국기들이 세워져 있다. 좌측 하단엔 인천상륙작전을 벌이는 군인들도 보인다. 그리고 광대들의 우측 공간엔 자유의 여신상, 비행기, 미키 마우스, 오리배와 사진을 찍는 군인 등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나열된 이미지들은 대부분 익숙한 것들이지만, 트위스터 놀이판 위에 서 있는 광대들과 함께 배치되었기 때문인지 꽤 낯설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이채은 작가가 인천에서 1년간 작업실 생활을 하면서 구상한 것으로, 그녀는 인천상륙작전이 있었던 역사적 장소인 월미도가 오래전 유원지로 변한 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는 상황에 주목했다. 전적지이자 유원지라는 이중성이 만들어내는 장소성의 모순과 부조화는 여전히 국제 정세에 따라 요동치는 한반도의 운명과 우리 사회의 불안정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채은 작가의 작품 특성이 잘 드러난 또 하나의 그림은 <거울 속의 거울>(2019)이다. 이 그림에도 의미를 알 듯 모를 듯한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뒤섞여 있다. 히치콕의 영화 <새>에 등장하는 여성과 카라바조의 <성 토마스의 의심>(1601~02)을 차용한 이미지는 전체 화면에서 가장 돋보인다. 이어 시위대와 대치 중인 경찰의 뒷모습과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공룡탈을 쓴 남자와 현수막 이미지로 시선이 옮겨 간다. 두서없는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며 흘러가는 현실의 모습처럼 상호 관련없는 이미지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는 작가가 받아들이는 각종 정보이자 작가의 의식을 형성하는 다양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정보 과잉의 일상 속에서 작가는 영화 <새>의 여성처럼 '불안'을 느끼며, 부활한 예수를 믿지 못하는 성 토마스처럼 '의심'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의 제목이 독일의 환상문학 작가인 미하엘 엔데(Michael Ende)의 단편집 <거울 속의 거울 Spiegel im Spiegel>에서 차용되었다는 것이다.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단편 소설 30편을 모아 놓은 미하엘 엔데의 <거울 속의 거울>에서는 각각의 독립적인 단편 소설이 독자의 관점과 상상력에 따라 마치 퍼즐 조각처럼 상호 연결될 수 있다. 끝없이 이야기가 생성되는 입체적인 퍼즐 조각인 셈이다. 이처럼 이채은 작가의 작품에 혼재된 이미지 파편들도 원래의 맥락을 벗어나 새로운 결합을 통해 화학 작용을 일으키며 또 다른 이야기를 형성한다. 이런 모양새는 '나비효과'처럼 일견 무관해 보이는 현상들이 얽히고설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실과도 유사하다.

2019년 갤러리 밈에서 개최된 개인전 <히든 플롯 Hidden Plot>에서는 이채은 작가의 실험정신이 돋보였다. 이 개인전은 특이하게도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핀조명으로 전시 작품들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조명에 의해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작품들을 보면서 전체적인 이미지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작품의 전체가 아닌 부분만 겨우 바라보게 되는 상황은 편파적이고 왜곡된 정보의 범람과 단편적인 이해 속에서 부유하는 한국 사회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 개인전은 자칫 관습적으로 흐를 수 있는 평면회화 전시 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관점과 형식으로 작품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다.

현재 이채은 작가는 네덜란드에 체류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예술교육기관인 라익스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ACC와 교류, 협력하는 프로그램으로, 참여 예술가들이 1차 연도에는 ACC에서 연구 조사 작업을 하고 2차 연도에는 라익스아카데미에서 작품 제작을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2019년에는 ACC에서 이채은 작가를 포함해 8명의 다국적 예술가들이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지금 라익스아카데미에서 작업 중인 그녀는 또 다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아인워크 갤러리에서 오는 9월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 갤러리의 전시 특징은 갤러리 이름이 의미하듯 하나의 작품만 전시하는 방식인데, 그녀도 이 아담한 갤러리에 대형 평면회화 1점을 전시하려고 한다. 그곳에서 이 시대를 관통하는 징후들을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기대된다.